심대흥 전우님의 십자성 부대 최진사도 처음 베트남 전적지에 갈때는 옛날 생각을 더듬으면 조금만 헤매면 찾을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근처까지는 왔는데 확 달라진 환경에 어리둥절 하였고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심대흥 전우님이 십자성 부대자리를 찾아서 사진찍어 오라는 오더를 줬는데, 최진사가 아는 정보는 209이동욋과 옆에 십자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209 이동욋과 자리는 어딘데...?" "그거야, 십자성 부대옆에 209 이동욋과가 있지...ㅎㅎ" 이러니 어찌 찾겠어요? 다행스럽게 지난번 베트벳에서 소개된 바 있는 "노병의 귀환"(클릭) 에서 소개되었던 월남전 당시 이장님의 아들을 만나게되어 안내를 받게 되었다. 푸옙(Phu Yiep)마을 사람들은 월남전시절 대민지원을 많이 받아 한국군에 대한 인상이 대단히 좋을 뿐만아니라 마을사람들은 당시의 한국군 백마가 왔다고 대대적인 환영을 할 정도이다. " 십자성 부대 자리가 어디래유?" 당시 어촌과 마을은 주택이 많이 들어섰으며 앞으로 이 지역이 공단지역으로 계획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동네사람이 앞장서서 데려가는 십자성 부대 자리로 모래사장을 한참 걸어서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십자성 탄약중대 자리라고 합니다. 폭탄을 땅속 깊숙히 저장했던 자리라 그런지 지금도 웅덩이로 남아 있었습니다. 맹호 박남철 전우가 혹시나 무슨 조각이라도 있나 찾으러 나섰으나 전과가 없었습니다. 저 너머에도 이쪽저쪽 구덩이에 또 구덩이로 연결된 것으로 보아서 십자성 탄약중대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지 주민과 베트남 말로 대화가 되는 최남열 전우가 백마가 떠나고 난다음의 상황을 듣고 있습니다. 심대은 전우님 잘 보세요. 사진찍은 제 뒤쪽이 바닷가입니다. 차량이 다닐 만한 길이 있군요. 십자성은 하도 넓은 자리에 분포되어 있어서 차량으로 둘러 보아야 했습니다. 넓고 넓은 모래땅에 그 옛날 십자성 부대로 가는 아스팔트 자욱만 찾아냈을뿐 그 이상은 잘 모르겠네요. 아마도 길을따라 마을이 들어선 것 같은데 월남전 시절 아스팔트는 군데군데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사실 월남전 시절 자신이 몸담고 있던 중대단위의 철조망 울타리밖에는 십자성이 있는지 전투지원중대가 있는지 관심을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백마30포병 철조망 남쪽으로는 155mm 966포병 알파가 있었고, 북쪽 철조망 건너에는 십자성 수송중대가 있지 않나 그런 기억 뿐입니다. 조그만 활주로 건너편 해안쪽으로 도깨비 극장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런 흔적들은 길바닥에 조금씩 남아있는 아스팔트 파편들만이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투이호아 지역은 공단 개발계획으로 발표된만큼 우리 흔적은 사라져 갈 것이 틀립없습니다. 이 철조망 울타리는 베트남軍 부대입니다. 이곳이 209 이동욋과병원 본부자리였다고 합니다. 베트남 여행중에 군부대 시설은 촬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답니다. 적발되는 날에는 살벌해 진다는군요. 북한 개성관광객들도 사진을 찍지 못하는곳이 많다고 하는데 하여튼 깨름직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혼바산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는데 오늘은 구름으로 덮여서 보이질 않네요. 저기 보이는 구조물이 "투이호아 209 이동욋과병원"이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던 탑이랍니다. 이 탑의 용도를 아시는 전우님은 댓글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십자성 부대자리는 십자성 부대원들이 와야 뭐가 있었는지 설명이 되겠습니다. 심대흥 전우님, 어디 좀 눈에 익은곳이 있나요? 아무리 십자성 본부자리를 물어봐도 아는 사람들이 없군요. 혼바산 강건너편으로 다리가 놓였고 그쪽으로 가는 길도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이 근처 마을에 내려서 찾아 보세요. 이 길은 예전 월남전때 백마30포병대대 그리고 966포병 알파포대 정문앞으로 가던 길을 포장한 것이다. 심대흥 전우님도 투이호아 에어베이스를 많이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사진도 하나 올립니다. 투이호아 미군들 에어베이스에서 백마사단으로 가거나 나트랑으로 귀국하는 전우는 가끔 수송기를 이용했다. 작은인원이 혼바산을 넘기는 베트콩에게 공격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미군들의 도움을 받았다. 심대흥 전우님의 십자성 부대찾기는 여기서 막을 내립니다. 예전 흑백사진들을 뽑아서 고히 챙겨서 넣고, 투이호아 땅에 다시 또 왔다. 뭔가 좀 건질 것 같은 예감으로... 베트남 1번도로에서 백마28연대 본부로 갈려면 철도를 넘어서는 곳이 있었다. 바로 여기가 그 건널목인가? 에전엔 허허벌판에 불루도쟈로 밀어놓은 자갈길이었는데 지금은 포장 되어있고 양쪽에 집도 들어섰다. 한참을 가니 좌회전 하는길이 나온다. 그리고 가야 해변이 나온다. 백마28연대 주변은 다른 전적지와는 다르게 도로도 생겼고 도시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어리둥절 하다. 그러나 바닷가 만큼은 그대로였다. 물론 바닷가의 집들은 많이 깨끗해진 모습이다. 아! 옛날이여~ 미군 에어베이스와 백마28연대 중간에 위치한 이 마을은 월남전 당시 비교적 베트콩 출현이 뜸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외출 나가다가 한번씩 들러서 담배와 야자를 바꿔먹던 흐릿한 추억도 있다. 수송부 전우가 5가론 스페아깡에 휘발유 가득채워 마을에 가면 왜 그렇게 반가워 하는지? ^^* 이 마을 어딘가에 이들이 살고 있을텐데 길고긴 해변의 어느쪽인지 기억에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투이호아 백마28연대앞 해변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월남전때는 연대본부쪽으로 민간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이 쳐져 있엇다. 우리가 오기전 베트남에 비가 많이 내렸다더니 나뭇가지 쓰레기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저멀리 혼바산엔 구름이 가려서 청룡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맹호의 전우들이 투이호아 백마28연대 백사장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런데 큰일이다. 내가 1년간 있었던 자리도 통 못찾겠는데, 심대흥 전우는 어디서 근무했는지? 백마1진 2중대 홍석진 전우는 어느쪽에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본인이 와서 예전에 찍은 사진과 산등성이라도 맞춰봐야 "아! 여기로구나" 긴가민가 머리를 갸우뚱 할텐데... 그래도 노력은 해 봐야지, "여보슈 이 동네 베트남 양반, 여기 혹시 39년전에 십자성 중대가 어디 있었는지 아시오?" 플래툰 / 현을위한 아다지오 한현욱: 28연대도깨비 29연대박쥐 30연대동보인가요 40년이 다되어가는데 많이 변했겠지요 내년엔 29연대 지역에 가렵니다 뭘 찿을는지 모르지마는~~~ -[12/28-14:02]- 한호성: 풀래툰 나와 친밀한 이름 거기에 속한 솔져 이음악을 듣게되면 전쟁에 비극, 전쟁의 상처, 머나먼 정글, 머~언바다. 너무어렵고 힘들었든 순간들 인간의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비극의 슬픔 극치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아마도 열개의 문과대를 40년 다녀도 직접 경험 하지 못하고선 모두를 표현 할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을 한다, (바로 극치라고 하는 것 속은 각자의 경험에서만 느끼는 결과 단 몇초동안만 느끼는 것이 극치이다. 이것들이 여러번 쌓이면 머리에 대못박아 놓은듯 눈에 흙 들기전 까지 잊혀지지 안고 영원한 전쟁의 상처 무었인지 모르게 그리움으로 남아 있더라고 결론을 내리고산다. 이 음악 곡을 듣는 동안은 베트남 전쟁의 모습들이 눈감으면 현실로 돌아옵니다. 흡수되어 정글로 들어거게 됩니다. 최진현 전우님 께서도 투이호아에서 어떤 형태의 아픔이 가슴속깊은 곳에 자리 하지 안았다면 사진과 하필이면 이음악 풀래툰을 합성 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제가 베트남에 살고 있는 것 그냥와서 좋아서 사는 것도 아니고 20여년 전부터 계획을 세운 것이지요 ? -[12/28-15:25]- 한호성: 몸은 병들었어도 지금도 늘 행복한 마음 이유는 월남전 내모습을 생각 하면 어떤 환경에살든 비올때 매복도 안나가고 더 불행한일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12/28-15:35]- 강 병장: 사진 화단장식이 105포 탄피?. -[12/28-15:50]- 박남철: 맹호가본 백마28연대 지역은 전적지(1년여동안머물든자리)찾기가 어려울것 같아어요.끝없이 이어진 해변에 바닥은 모래밭 40여년동안 모래땅은 변하였고 가까이는 평야지역이라 산봉우리나 능선같은 변하지않는 지형지물이 없어니 어디를 기준으로 찾는지 하여튼 최진사님은 흔적이라도 찾겠다고 모래밭 전나무인지 땅딸막한 나무사이를 헤메고 다녔는데 특별한 전과는 없는뜻 흐탈한 모습를 엿볼수 있었습니다. 우리맹호 지역은 험준한 산악지역이라 항상 긴장하고생활 했는데 이곳은 해변의 평야지역이라 vc의 위협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겨지는군요 -[12/28-16:48]- 기갑 1: 가보면 아무것도 없고 그때의 조그마한 흔적을 찾아서 이리저리 찾아보고..떨어진 군화조각,크레모아 파편조각들 이러한 것을 줏어들고 아련히 그시절로 추억의 여행을 떠나 보았습니다.저가 항상 주야로 경계근무 서던 바로 그자리에서 사진도 찍어보고...정말 죽기전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전우들과 같이 못가면 한전우님 수고 스럽지만 저와 638 고지에 오토바이 타고 한번 가십시다..음악과그림 그시절 추억 생각하며 잘 보았습니다.내일 오막살이로 가면 새해 지나고 올것이기에 미리 새해 인사드립니다.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요..한전우님께서도... -[12/28-16:57]- 검은베레: 내도 병장 땐 한 인물 했다 아이가! 목소리가 들려오내요. 찿아보면 그 능선 은 살아 있고 실날 같은 흔적만이 있는데 나이가 먹어도 어머니 품속 같은 그리움이 있어 젊음의 생을 걸어 보았던 전장터를 다시 찿아 보나 봅니다. 전우여 건강 하소서! -[12/28-17:20]- 류병욱: 최진현 전우님 안녕하세요 농장에서 돌아오자 바로 컴부터 검색합니다 좋은사진 마이도 올렷네요 28연대는 도깨비부대 29연대는 박취부대 전두환씨가 연대장할때는 이기자 전두환부대라고도 불렸지요 저도 28연대 통신대 VHF단말 근무처 1개월파견 근무하고왔습니다 그곳에서 기억나는것은 근무처 옆에는 바로 바닷가라서 근무처 안에서 낚시도 하고 수류탄으로 고기도잡고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트랑시 건너 섬하나가있는데 이름은 잘모르겠습니다 미군통신대와 월남통신대 그리고 우리 백마통신대 같이 근무한곳입니다 그곳에서는 2개월 있다가 29연대1대대10중대 21번도로 캄보디아 가는길 반닝이란곳 김옥열 전우님께서 근무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있다가 귀국하였습니다 저의 병과는 통신이라도 작전지역에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차량에서 근무하지만 적에게는 항상 제일먼저 습격받아요 통신이투절하여야 적들이 적들 마음대로 할동할 수가 있거던요 독수리71 다시1호 작전때는 치열한 전투었죠 그당시 단말안테나가 B40에 명중되어 파손당하고 다시 설치하고 사단과 통화하였지요 혼이나도 많이난 걸요 죽는줄 알았지요 -[12/28-18:38]- 백동기: 도깨비 부대가 바로 해변 백사장을 점하고 있어서니 재초작업도 없었을것 같고 더울때는 수영을 하다가 근무를 하드라도 좋았을것 같은데 이상적인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12/28-19:02]- 김영배b: 내가 근무했던 28연대 2중대 2소대는, 내가 67년에 귀국할때까지 해변가는 커녕,바다 구경을 한적이 없다.혼바산 아래 늪지대를 건너 혼바산을 넘어 8부 능선 까지 왔을때 멀리 바다가 보였다.그것도 잠시뿐,나무와 바위가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고 혼바산을 다-내려가면 1번 국도가 있었다.(내가 갖고 있던 지도에 의하면)그 1번 국도를 점령키 위한 작전이었고 내 기억으론 3중대가 그 방향으로 전진했고 나의 2중대는 그 지점에서 후측인 남쪽방향이 작전 지역 이어서 방향이 바뀌였다.먼거리를 돌아 처음에 출발했던 지역으로 돌아 왔는데 바로 우리가 건넜던 늪지대 앞에서 3킬로 떨어진 1킬로 앞(하도 고생을 해서 지도 위치도 기억한다.3285.9351지역)이다.국도가 있는곳에 2중대 본부가 있었고 나에 2소대 1분대는 거기서 더 먼 내륙 산 능선에 있었다.그때가 67년 3월 이었고 나의2소대 이만생 이차세 전우가 그곳에서 전사했다. -[12/28-20:45]- 김영배: 위에 사진은 (내가 늘 갖고 있었던 지도에 의하면)내가 근무했던 곳에서 가까운 곳이건만,한번도 가 본적이 없다.그때는 작전도 오래했고 敵情이 많아서 매일 매복이 실시되 대낮에도 맘놓고 다닐수 없는 살벌한 곳이었다.사진을 찍을수있는 여유도 없고 c.레이션도 헬기로 떨어트려 줬고 밤이 되기전에 살금살금 걷거나 낮은,높은 포복으로만 다녀 가까운 해변가에 가 본적이없다. 사진을 보니 이제 그 지역에 허리를 펴고 맘놓고 다니며 사진을 찍은것을 보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다음 사진에는 나의 2 소대 지역이 나오길 바라고 바란다. -[12/28-21:00]- 이성윤 : 오랫만에 들러보니 여전히 전우님들의 활약이 대단 하시군요! 반갑습니다^^ 나라를 사랑 하시는 마음과 전우애를 가슴깊이 느낍니다. 최전우님께서 투이호아를 다녀오셨군요^^ 저도 꼭한번 가보고 싶은데~~ 67년12월부터 69년3월까지 28연대1대대2중대화기소대(백마홍도깨비부대)에서 근무 했습니다 당시에는 2중대는 대대본부와 연대본부에서 군용차로 한 20분 떨어진 혼바산믿 외진곳 중대 전술기지에 있었습니다 소총수들은 위문공연이 오거나 가끔 일부 인원이 급수차 호송으로 차출되여 연대본부에 다녀오는 일 이외에는 늘 혼바산에서 작전 중이거나 작전이 없을 때에는 오전에는 중대기지에서 취침하고 오후에는 매복지점 반대편 마을이나 들판에서 취침 하고 밤에는 매복지점으로 야간이동하여 매복 하였으므로 부대의 위치가 어디쯤인지는 알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작전중 혼바산이나 봉루망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고 찾으라고 하면 지금도 눈앞에 선 한데??? 더 늙기전에 봉루망 고개나? 혼바산을 등산 ? 한번 해 보았으면 좋겠네요 !! 전우님들 건강하십시요 -[12/28-22:43]- 최현득: 966도 처음에는 연대본부가 있는 30포 옆에 있다가 오작교 작전 전에 청도깨비가 있는 3대대 지역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연대본부가 있었던 거리와 해변을 잘 보았습니다 저들도 전번에 갔을때 찾는데 많은 힘이 들었습니다 40년이란 세월이 주위를 너무나 변하게 만들지요 부근이라도 가서 위안을 받을수 밖에 없습니다 수고들 하십니다 -[12/28-23:31]- 신남균: 정말로 바다는 말이 없군요 당시에 생사의 기로에서 거닐던 그모래사장이 그대로라니 지금도 시누쿠의 프로펠라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12/29-1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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