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때 한국군 부대옆에 사는 마을에 한국군의 탄박스나 폐기물
그리고 먹다남은 잔반 처리물 같은 것들을 쓰레기장으로 버리러가면
이렇게 동네 꼬마와 주민들이 몰려 듭니다.
1967년엔 김치가 나오지 않던시절이라 우리 식당에도
미제 레이션 양식음식만 매일 나와서 느끼한 음식
고기덩어리 같은 것들 한국인 입맛에 맞지않아
너무 질려서 절반은 잔반통에 버렸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우리 625때 사진과 흡사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 사진을 보면 미국의 정우진 전우님 푸엡마을이 생각나실겁니다
(사진제공: 맹호혜산진 전투지원중대 이광필 전우 1967년) vietvet
황진국: 지금의 월남은 딴세상이 되였지요 그러구 봄 월남고 우리는 비슷한데가 많은것 같으네. -[11/16-07:33]-
정우진: 와와~~사진 정말 반갑고 그때 생각이 나서 가슴이 찡함니다 투이호아 탄약중대 매일아침 마을에 저렇게 하엿지요... 아직 가슴 아픈것 가끔 못된 전우가 저분들 머리위에도 부엇지요... 2008년 방문때 무릎꿀고 큰절 하면서 사죄를 하였습니다. 이광필 전우님 최진사님 감사 드림니다. 카피 하겟음니다. 전우님들 건강 하십시요. -[11/16-07:54]-
최진사: 우리나라가 625전쟁 끝나고 다 부숴진 폐허에서 먹는것조차 자급이 안 되었을때
국민학교에서 미국의 원조물품 강냉이 가루나 드럼통 유지분유 우유가루를 나눠줘서
그걸 배급 받아 먹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젊은사람들 우리나라가 그냥 잘 살게 되었는줄 그렇게 느낄진 모르지만
우리세대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 낸 시련끝에 얻어낸 결과란걸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잘 살게 되니까 새마을운동 정신을 독재정권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정치권 x들 반성해야 합니다. -[11/16-09:06]-
김영배: 아직도 북한은 50 여년전에 자기네 백성들에게 약속했던"이밥에 고깃국 먹여주겠다"는 그 말을 지금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 입후보자가 후보 연설에서"본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쌀밥에 고깃국 먹게 해 주겠다." 이렇게
말 한다면, 그말을 듣는 유권자들이 뭐라고 할까요.
단군이래 지금 이렇게 잘살게 된게 박정희 대통령 德이라는거 그걸 모르면 바보천치죠.
두명의 야당 대통령이 잘한게 뭐 있습니까?한일 어업협정해서 바다를 내 주기도 했고 nll로 敵에게 아부나 하고.
박정희나 전두환 대통령 같으면 말도 안되는 짖들을 한 걸...
여기 베트벳에 이름도 밝히지 않고 가명으로 빈정되는 글만 쓰는 사람들,
대답좀 해 보시지요.犬을 반려 동물이라고 뽀뽀하고 가슴에 안고 다니는 사람들...이건 배고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행동예요.배고파 보세요.내 - 먹을 것도 없는데 개를 어떻게 키웁니까.
5.000 년간 이어온 보릿고개를 해결한 대통령이 누군줄 아십니까?
허기야 여의도가 비행장 였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릿고개가 뭔지나 아실런지... -[11/16-10:25]-
홍종만: 우리들이 參戰했던 越南의 中部地域은 "安南"이라고 하여, 韓國戰爭으로 우리가 어려울때, 그곳에서 나는 "安南米"를 들여와 먹었던 記憶도 있습니다...越南戰爭으로 民草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저럴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픕니다. 그당시 각부대의 民事兵들이 조금더 關心을 가졌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1/16-10:52]-
신용봉 : 저런 모습을 보면 어릴때 생각이 납니다. 저도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는 장소에 가서 손을 내밀고 먹을것 달라고 했던 시절이 있었지요. 못사는 나라의 비극입니다. 다시는 한반도 땅에 저런 비극이 또다시 발생되지 않아야 되는데 이땅에서 북의 추종자들이 저런 모습을 보면은 어떻게 생각할지... 허긴 저런걸 봐도 북의 김씨 일가에 세뇌된 넘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11/16-14:14]-
답 글
69년도 맹호 10포병 대대 알파포대 주둔지인 동수안 카이강
다리옆 넓은 모래톱에 메일밤 포탄을 쏘고나온 박스와 쓰레기등
취사반에서 나오는 잔반통을 추레일러 까지가득 실고 나가면 도착 하기도
전에 중간에서 시간 맞춰 가다렸다가 위험을 무럽쓰고 달리는 차 뒤꽁문니에
메달려 올라타고 먼저 잔반통을 차지 할려고 달려들때는 다칠까봐 조마
조마 긴장을 하게되고 몾타게하여도 막무가네 배고픈 그들을
막을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도 시골 농촌인데도 주민들의 생활고가 심했든것 같아습니다.
그 쓰레기 속에서 어쩌다 c레이션의 비스켓 이라도 찾으면 다행이죠.
잔반통에 잔만을 서로 많이 가질려고 야단이고 잔반을 모자나 비닐봉지등
통에 담아서 강물에 씻어 밥알이나 고기만 건저 집으로 가져 갑니다.
할아버지나 할머님 들도 찾을려고 하시지만 아이들 이나 젊은 이들에께
밀려서 하나도 몾가져 가지요. 가끔은 부대에서 잘않먹는 B2 나 비스켓 같은것
모아서 가지고 나가서 사람들 몰래 노인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보면 너도 나도 달라고 때을 쓰기 때문에 적은 량이라
안타깝지만 어쩔수 없어습니다.
2013년 11월 16일 동춘 박
최진사: 전적지 여행 갔을때 카이강 강변에 쓰레기 버리던 곳 혼자 찾아가던 맹호 박남철 전우님 뒷모습이 생각납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트럭에 달려들던 꼬맨이들이 그 동네에 살고있을텐데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잊혀졌을겁니다. -[11/17-07:57]-
홍종만: 6.25당시 우리들의 모습이 비춰지는듯 합니다...전쟁으로 피폐했던 때를 기억하게 하는 사진입니다. -[11/17-08:27]-
참전자: 우리 나라도 저렇게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우리 전우님들의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곳 잊을수 없는 추억 입니다. -[11/17-14:58]-
황진순: 초등학교 입학전 인근 사천비행장에 미군이 주둔 하였답니다. 포차추럭 지나가면 먼지를 뒤집어쓰며 기브미 초콜렛,추잉껌 기브미 하며 따라다니던 그시절 생각해봅니다.벌써 60년이 다되어가네요.박전우님 건강하셔요. -[11/17-2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