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전야 사이공강의 유람선상
[베트남go] 사이공 최후의 만찬 - 完結
사이공의 마지막 밤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40년만에 다시 월남땅을 밟을 때는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 것이다. 최진사도 처음엔 공산주의 북한을 생각하며 월남전 당시 적군이던 따이한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는데 공항을 통과하면서부터 보이는 사이공의 모습은 과거 자유분방하던 시절의 분위기와 여전해 보이기 때문에 한숨을 놓게 되었다. ![]() 월맹군이 오랜 전쟁 끝에 공산화시킨 호치민(사이공)시는 다시 서방화하여 옛 사이공의 모습과 똑같이 환원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방이후 자본주의가 되살아난 사이공에는 남국 특유의 풍요한 냄새가 느껴진다. ![]() 과거를 돌이켜보면, 1975년 4월30일 자유월남은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주월한국군이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었던 자유월남이 파리휴전협정에 의해 한국군이 철수하고 만 2년만에 자신의 나라를 자신들이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 월남의 모든 자본은 국가소유가 되었고 그 관리를 북쪽 하노이 공산당원에게 맡겨졌다. 어린이들에게는 공산주의 노래를 가르쳤고, 흥청대던 사이공 경제는 폐쇄적인 사회주의 정책으로 갈수록 악화되어 갔다. 불안속에 이 나라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수십만의 사람들이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탈출하는 보트피플이 생겼다. ![]() 뗏목이나 작은 보트를 이용 탈출을 시도했다. 보트피플중 남지나해의 풍랑에 익사하거나 굶어죽기도 했다. 그러나 동남아 여러나라에서도 탈출자를 보호해줄 입장이 아니어서 나라잃은 그들을 받아 주는곳이 없었다. 나라잃은 자유월남 사람들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그들은 수용소에서 미국이나 호주로 건너갔다. ![]() 최근 퇴보속에 침체되어가던 베트남이 외국에 대한 시장개방으로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도이모이 정책으로 개방정책을 쓰면서 관광객을 유치하며 최빈국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변화를 택했다. ![]() 경제개혁을 위하여 자본주의를 받아드리고 시장을 개방하여 해외기업의 투자도 받아드렸다. 사이공을 대외무역, 외국투자의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보트피플로 사이공을 등졌던 난민들이 성공하여, 개방후에 다시 투자자금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 호치민 시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자 자본주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자유월남 사람들은 이 도시를 다시 ‘사이공’이라고 부르고 있다. 많은 회사이름 등에서 ‘사이공’이 다시 살아나고 버스 등의 행선지에도 ‘호치민’ 대신 ‘사이공’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 사이공 강엔 선상호텔도 있고, 유람선 고급레스토랑이 네온싸인을 켜놓고 관광객을 기다린다. ![]() 사이공 강에 어둠이 깔리면 유람선 레스토랑에 화려한 오색등이 켜지고 외국 관광객과 베트남인들로 그득하고 그리고 좌석마다 화려한 해물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 월남전 참전용사들 테이불엔 소주도 보이고 럼주도 보인다. 시원한 사이공 강바람에 베트남 전적지 여행 최후의 만찬을 들고 있다. 엿새동안 꿈같은 시간이 흘렀다. 여기서 한잔하고나서 심야에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탄손누트 공항으로 가면 한국으로 날아간다. ![]() 노래하는 저 가수 친구는 지난해에도 보았는데 똑같은 레퍼토리로 ♬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신났다. ![]() 유람선의 갑판 위에는 5인조 밴드와 남녀가수가 뱃노래를 부른다. 우리 가요곡도 많이 불러주는데 그 이유는 한국인들이 팁을 후하게 주기 때문일것이다. 간혹 한국말을 섞어가며 나와서 노래를 신청하란다. ![]() 경제개방이후 자본주의가 되살아난 사이공에서는 향락 문화도 같이 살아나는 듯 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해군복장을 한 웨이터들이 음식을 날라주는 속에 음악에 맞춰 매혹적인 댄서가 불춤으로 시선을 모은다. ![]() 2008년 12월초에 다녀왔는데 다녀온 후 60여일동안 55회에 걸쳐서 [베트남go] 전적지 답사기록을 올렸다. 다음에 가는 전우들을 위해서 자세히 올리려다보니 이렇게 길어졌다.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최진사에게 촬영을 할 수 있게 렌트카의 맨 앞자리에 앉혀준 맹호10포 알파포대 전우님들의 배려에 감사의 말씀을 남깁니다. 지금까지 보면서 댓글을 달아서 격려를 해준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직도 간추리지 못한 다른 사진들은 차츰 껀수가 있을 때마다 생각나는대로 소개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
사이공 건져 강의 유람선상
이제 [베트남go] 시리즈도 막바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처음 공항대합실에서 만나 베트남 전적지에 가면 자신의 막사를 찾아보는 것하며, 마을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그 사람들을 만나볼 것같은 설레임을 가지고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었다. 베트남 다녀온 후 지루하게도 많이 찍은 사진을 간추려 올린 것이 지금 몇회째인지는 몰라도 거의 다 골라서 올린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사이공 시내 명소를 다니던 사진과 사이공 유람선 최후의 만찬이 남아있지만, 올릴까 말까 번민하고 있다. 왜냐면 탱야탱야 유람기만 올라온다는 야유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답사여행기를 올리는 것은 차후로 파월전우 여러분들이나, 그 자재분들이 혹시나 그때그시절 전적지를 찾는다면 앞서간 전우들의 답사기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떻게 생각하면 시시콜콜한것까지 모두 나열하는 것이다. 이렇게 많는 시간을 소비해가며 답사여행기를 나열하는 것은 절대로 자랑하기 위해서 올리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딸라 파동이후 베트남 가는 여행객들도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타고갈 비행기도 작다.
최진사는 1970년 첫 파월이후, 2005년~2008년까지 총5파를 했다. 그러나 아직 못 가본 곳이 너무많다.
여행이란 세계 여러곳을 다녀보는것도 좋지만 이렇게 한 지역을 깊게 알아보는것도 좋은 것 같다.
탄손누트 공항에 내려 그곳에 거주하는 전우들의 환영을 받으니 전우애를 물씬 느꼈다. 한호성, 김성찬 전우는 캄란 '뚜이'양의 결혼식 때문에 우리 일행과 호치민 공항대합실에서 만난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좀 아쉬웠지만, "뚜이'양의 결혼 축의금을 전달하며 반가운 악수를 나누고 격려를 했다.
베트남 5파를 하는 동안 최진사와 늘 동행했던 울산의 김재한 전우는, 그동안 늘 우리 일행을 가이드 했던 '미즈 쫍"과 반가운 재회를 이렇게 포옹으로 표시하다가 사이공주재 기자들 카메라에 포착됐다.
"미즈 쫍"은 한국 전우들의 입맛을 잘 알기 때문에 식당에서 음식 고르기, 마을에서 사진 주인공 찾아주기, 관광지 안내하기 등등,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고 친절하게 여행하는 동안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벌써 다녀온지가 40일이 넘어서 그런지 다시 또 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걸어 다닐 수 있는 다리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자주 다닐 생각이다. 혹시 재파를 할 의향이 있는 전우 님들께서는 호치민에 파월전우들이 살고 있으니 필요하신 정보나 궁금하신점이 있으시면 망설이지 말고 물어보세요.
다음번 시리즈엔 인민궁전,렉스호텔 맞은편 백화점에서 겨울용 고어텍스 잠바(노스페이스)를 싸게 파는 곳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촬영: 월남전과 한국/최진사)
박용환: 베트남에 5파라구 하시니까..3파를 하고오신 최승일 포반장님이 생각납니다..건강은 하신지요? -[01/17-09:36]-
최현득: 미즈 쫍과 포응도 하고 가수에게 팁도 건네고 김재한 전우의 운신의 폭이 넓음을 보는것 같습니다 강태공과 함께 울산에 만났을때 맹호10호 알파를 모을려고 노력한 노력담을 듣고 흉내 내기조차 어렵다고 생각을 했는데 하는 모든일들이 우리 참전전우들의 표상이 됩니다 쥔장을 그림자 같이 동행하며 재파를 거듭하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01/17-09:41]-
수색대: 만찬 사진 올리세요 음식문화도 놀이문화도 색다른 체험이니까 답사나 여행하면서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트남 번화가에 기마동상이 가끔 눈에 띄더군요. -[01/17-10:35]-
강충경: 참전전우들의 월남땅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에 대한 향수의 갈증을 이번에도 맹호용사들과 함께 5파를 통해서 상세히 소식을 전해준 최진현전우의 드라마틱한 동영상,사진,아름다운 글과 함께 우리 참전용사들은 크니큰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갑축년에도 "월남전과한국" 의 발전을 기원하고 함께하는 분들 모두에게 행운과 건강을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01/17-10:56]-
검은베레: 엔화의 가치가 치솟으니 기생관광이 판을 치는군요. 한국인 여행객도 확 줄었다고 하니 또 원화의 가치가 오르면 외국도 옆집 놀러가듯 하는 전우님들이 많으실 겁니다. 점잖으신 김재한 전우님 반가워서 따님 같이 꼭 안아주시니 국적은 달라도 따듯한 인정은 매 일반 일 것입니다. 안방에 앉아 공짜 여행을 하면서 고마움은 모르고 "아마추어 같이" 회 치는인간도 있나 봅니다. 가자미 눈깔족들은 무시 하십시요. -[01/17-12:24]-
황진순: 월남의 마지막 밤을 그것도 출국 비행기 시간대가 심야라 그 시간 맞처서 사이공 강변에서 저녁먹고 잠시 여흥을 즐기는데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신경쓰지 마십시요..그림속의 맹호,백마 전우님들 건강하셔서 6파 7파 오래도록 전우애 나누십시요.잘 보았습니다. -[01/17-13:34]-
신장로: 재한이와 미즈 쫍 과의 재회장면이 마치 천생연분에 봄보리개떡 이라는 말처럼 죽여주네여..항상 건강 하기를... -[01/17-20:14]-
최 남 열: 전우님들 몇파라도 계속하세요. 여기에도 우리전우들이 있으니 올해에도 건강 하셔서 언제든 오시면 연락하시고 전우들끼리 만나서 좋은 시간들 계속돼면 좋겠슴니다. -[01/17-23:32]-
심대흥: 난 왜 요 페이지를 못보고 건너 뛰었을까? 오늘에사 발견하다니...이거 점점 치매끼가 나타나고 있는건 아닐까? 에이~ 아니겠지~베트남은 우리 파월장병에게는 풀한포기 나무한그루 모래알 하나까지 모두 다 추억의 대상입니다. 5파까지 한 운좋은 전우님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한번도 못가본 불쌍한 정우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우리에겐 그곳을 다녀온 전우들이 올려주는 전적지탐방기를 보면서 아득한 그 시절을 떠 올리는 것이 유일한 위안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시이공 사진을 보면서 나는 투이호아와 나트랑을 오버랩 시킵니다. 희뿌연 맹글로브숲속으로 조각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함꼐 노를 젖습니다. 구찌땅굴에서 고개를 치미는 사진을 보면서 몸서리 쳐지는 혼바산의 베트콩을 연상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헬기에 실려 우리 12군수대대연병장에 착륙하던 28연대 전우들을 떠 올립니다.이름도 알수 없는 열대과일이 산더미처럼쌓인 시장 풍경을 보면서 푸헵마을로 민사작전을 나갔을때 맘씨좋은 아저씨가 따주던 야자열매가 생각납니다. -[01/20-10:43]-
심대흥: 언젠가 유람선에서 우리 한국가요를 부르던 월남가수의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휴일아침이면 식당앞 스피커에서 울려 퍼진던 <사이공데플람>이 슬그머니 뇌리속에서 치밉니다. 전쟁이 있는곳에서도 삶은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모든것이 그리움이고 잊을수 없는 추억입니다. 유람선도, 거기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도, 무희들의 춤사위도 역시 이와 다를바 없습니다. 월남의 모든것ㅡ 우리 파월전우들은 모두 모두 그것을 그리워 합니다.
최진사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합니다. -[01/20-10:51]-